「애월충(愛月虫)」시집의 매혹적인 思惟와 시대적 소임의 성찰
1994년 3월 30일 발행한 김기진 시인(현 영주문화원장) 시집「애월충(愛月虫)」을 읽었다.
곧 3월 30일이 되니 꼭 32년 전에 발행된 시집이다.
제목부터가 허연 수염을 휘날리는 철학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장 ‘기도. 1’을 읽으면서 12세기 프랑스의 베네딕토회 수도사이며 신학자이자, 중세 유럽을 대표하는 신비주의자인 기욤 드 생티이라가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또한, 어떻게 바로 자기 안에 그 모습을 비추는 자의 찬란함에 정복당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하듯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이유는 영적 사고로 사유할 수 있고 이성과 감성을 모두 가진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너무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시다.
나의 기쁨이
타인의 고통에서 오지 않게 하시고
나의 행복이
타인의 눈물에서
얻지 않게 하소서.
나의 승리는 패자에서 얻지 않고
노력에서 이루게 하소서.
나의 용기가
타인의 열등감에서
일어나지 않게 하시고
정의에서 일어나게 하소서.
나의 지혜가 타인의 어리석음에 있지 않고
깊은 생각에서 오게 하소서.
「기도. 1 전문」
무엇이든 창조하는 영혼은 위대하고 맑고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이다. 마음에 얼룩이 지거나 욕심으로 가득 찬 영혼엔 창조라는 가치가 들어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시는 인간에게 있어서 최상위층을 형성하는 덕목이나 관용성을 여백의 나뭇가지에 적절히 배합시키고 여기에 앉는 새나 벌레나 모든 곤충이 따뜻한 서정을 노래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섬세하게 직조한 언어로 우리 인간들이 호흡을 가다듬고 당당한 존재감과 인간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가다 죽을 수 있는 시학적 음계를 파릇파릇 걸어 놓았다. 읽는 동안 숙연하고 황홀하고 숭고했다. 합장하고 기도를 할 수밖에 없는 명심보감 같았다. 이런 시는「기도. 2」에서도 멈추지 않고 흘러 감성적 파도를 일으켰다.
치열한 자본주의 논리가 지배하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라는 일깨움을 설파하는 시다.
이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는 사회 현상에 쐐기를 박는 문장들 앞에 꿇어앉아 경배를 드렸다.
다음 시「놓아라,-초암사」에서도 푸른 시의 결은 마르지 않고 출렁인다.
‘나는 부자 부러워한 적 없고/ 높은 벼슬 마음에 둔 적 없다// 얽매임이 없이 자유롭게 살았으며/ 베풀며 살아가니/ 가진 것 없어도 넉넉하다// 갈대가 바람에 꺾이지 않는 것도/ 뜻이 있으며/ 학이 천년을 사는 것도/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많이 가지면/ 잃어버릴까 걱정이요/ 멀리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근심이 따르고/ 올라가면/ 내려오는 어지럼병이 생긴다// 놓아라/ 편안하다/ 나무아미타불/ 부처님 미소를/ 중생이 어찌 알겠습니까.’초암사 스님의 입술을 통해 연초록 생명에게 금낭화처럼 곱게 줄지어 피어나는 담홍색 말들을 시로 형상화 시켜 매혹적이고 겸허한 향기를 풀풀 뿜어내는 생명의 모천으로 시의 격을 높이고 있어 눈을 시리게 한다.
다음 안내지를 따라가본다.
해 가리고
물 주며
쓰다듬은
서투른 몸짓이
너에겐
아픔이었나 보다.
연두 치마 분홍 저고리
청초한 모습으로
함께 있어 주길
바랐던 건
나의 욕심이었나 보다.
잔설이 분분할 때
푸른빛 청향으로
웃어 주리라
믿었던 기다림이
혼자만의 사모였나 보다.
야윈 몸으로
토라져 있는 것이
내가 너를 바라보는 연정의
눈길 때문이라면
나의 마음 접어 두고
우리 맺었던
인연일랑 풀어야겠다.
「한난(寒蘭)」전문
위에 시「한난(寒蘭)」에서 ‘해 가리고/ 물 주며/ 쓰다듬은/ 서투른 몸짓이
너에겐/ 아픔이었나 보다.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쓰라린 상처를 홀로 견디며 상처를 딛고 피워주길 바라는 간절함을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불러내며 안쓰러워하고 있다. 어둡고 캄캄한 허공을 뚫고 나올 겨울 난에 빗대어 소외된 인간관계를 소환하고 있다. 때로 인간은 본의 아니게 남에게 상처를 준다. 그러나 그것을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인간임을 말하고 있다. 시인은‘연두 치마 분홍 저고리/ 청초한 모습으로/ 함께 있어 주길/ 바랐던 건/ 나의 욕심이었나 보다.// 잔설이 분분할 때/ 푸른빛 청향으로/ 웃어 주리라/ 믿었던 기다림이/ 혼자만의 사모였나 보다.’라고 절제된 감정과 고도의 이미지로 행간의 장치를 탄탄하게 끌고 나가는데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야윈 몸으로/ 토라져 있는 것이/ 내가 너를 바라보는 연정의/ 눈길 때문이라면/ 나의 마음 접어 두고/ 우리 맺었던/ 인연일랑 풀어야겠다.’라고 인간은 만물을 끌어안고 포용하는 따뜻한 가슴에서 대의를 끌어낼 때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매화 향기 휘날리는 시어로 살아있는 모든 생명 경외 사상의 시 꽃을 피워내고 있다. 시들지 않고 영원히 피워 인류의 등불이 될 빛나는 창조적 시선을 완수한 시이다.
다음 시 「길」 위를 걸어본다.
공자는「논어」에서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앎이다.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라고 했다. 이는 진정한 앎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라는 말이다.
보이지 않아도 될 것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안 해도 될 말도/ 안 가도 될 곳 또한/ 안되는 것이 넘치고 넘쳐/ 해일처럼 밀려옵니다.// 건너야 하는 길의 경계가 아득해집니다./ 점점 멀어져 가는 거 끝은/ 피안의 길목일까요./ 멀고도 가까운 저 길 또한/ 스스로 부질없는/ 내 안의 경계이겠지요. 「길」 전문
「길」에서 시인은 道를 깨달은 성자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삶을 통해 체득하기 어려운 깨달음 즉, 질서가 무너지고 혼란스러운 사회 현상에 중량감을 확장하기 위해 잠언적(箴言的) 교시를 자신의 성찰로 치환시킨 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잠언적 시 세계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와 교감으로 다른 시와 차별화된 감동을 담아내며 시인만의 당위성(當爲性)을 현상학적으로 그려낸다. 이는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난 창의적 예술작품인 것이다. 목마른 대지 위에 단비와 같은 시다.
이 시집 전체에 햇빛 좋은 날 빨랫줄에 빨래가 뽀송뽀송 말라가는 소리를 듣고 있는데 느닷없이 ‘빨래 걷어라’라는 할머니 말씀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나 습관적으로 이기에 젖어 사는 우리에게 느닷없이 들려오는 죽비소리 같다.
이 죽비소리에 화들짝 깨어 읽어야 할 경구(警句)들을 따라가본다.
소백산 철쭉을 꺾어다/ 방에 두었더니// 솔바람 소리/ 새 소리/ 석간수 흐르는 소리/ 구름 둥둥 떠가는 것까지/ 보여 주더니/ 사흘을 못 있어/ 어지럽단다
----「환경」 중에서
잠자리채 속에/ 매미 풀무치가 파닥거린다/ 냇가도 보이고/ 숲도 보이고/ 넓은 들판을 달린다.
----「도시 아이의 꿈」 중에서
속을 뒤집어/ 보일 수 없는 것이/ 다행이다// 위장은/ 탐욕으로 가득하고// 양보가 없는 독선은/ 혈압이 위험수위다
----「겉모양」 중에서
집마다 대학생/ 골골이 박사님// 도덕이 없다/ 정이 없다/ 살기가 무섭다/ 참 묘한 일이다
----「참 묘한 일이다」중에서
오늘도 은전 한 닢/ 목에 걸려/ 우는 사람이 있다.
----「위정자- 유세」 중에서
현실을 알고/ 자신을 알면/ 불면증 환자가 된다.
----「착각. 1」중에서
이기적이고/ 남의 잘못보다/ 내 잘못에 너그러운/ 나를 닮은 사람이 없다.
----「닮은 사람」 중에서
은밀한 곳에/ 문신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사실을 인정한다.
----「도장」 중에서
숨이 막히고/ 눈이 어두워지고/ 목이 마른 것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공해」 중에서
입다물고/ 눈감고/ 깊이 잠든/ 너의 침실을/ 오함마로 부수고/ 쇠꼬챙이로 쑤시어/ 영문도 모른 채/ 정신없이/ 알몸으로 뛰어나온 너를/ 빙판 자갈 위에/ 내동댕이친다
----「동면 개구리」 중에서
반나절이면/ 갈 수 있는/ 고향인데/ 마음으로만/ 해가 저문다.
----「고향. 2」중에서
산송이 냄새나는/ 솔바람이/ 수숫대에 일렁이면/ 유년의 속살을/ 송기(松肌)처럼 벗기고 싶다
----「향수」 중에서
소백산 언 바람/ 문풍지 울리며/ 나의 뼈속을 후비고/ 남은 사랑 쏘시개로/ 불을 지피지만/ 온기(溫氣) 없는/ 방바닥 먼지만 일고/ 문틈으로 흐르는 눈물은/ 하늘을 원망했다
----「울 어메 땅」 중에서
오이씨 같은/ 손톱에다/ 봉선화 물들일 때/ 계집 아인 줄 알았지.
----「또래」 중에서
버들피리 꺾어 불며/ 하이얀 신작로 길 가자/ 수양버들 너울대는/ 그 길로 가면/ 까까머리 마른버짐 아이들이/ 시오릿길 학교에서 돌아온단다.
----「아이야」 중에서
시골 장터를 지나다가/ 어머니를/ 오랜만에 뵈었다./ 그렁그렁한 눈물 속에/ 일렁이는/ 타이어표 검정고무신
----「검정 고무신」 중에서
욕심을 배우지 못해/ 싸움은/ 못하고// 질투는/ 아름다움을 보지 못해/ 못한다.
----「청노루」 중에서
앞산 노송(老松)이/ 가얏고 소리를 내면// 귀틀집 마당귀/ 감나무 위에/ 달빛 푸르게 쌓입니다.
----「山情」중에서
구름 드리운 강가/ 풀 뜯는/ 누렁소/ 새끼 누이고/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을/ 되새김한다.
----「忙中閑」 중에서
번뇌를 접어/ 두 손을 모으고/ 제를 올리는/ 파란 머리 위엔/ 한낮의 햇살이 파랗다.
----「山寺의 봄」 중에서
산은 짐승처럼/ 버티고 섰다.// 풀벌레의 밀어가/ 익어가는 시간
----「산촌. 1」중에서
청노루/ 털갈이 못한/ 그리움으로/ 긴 울음 울면/ 나뭇가지 끝에/ 미풍이 일렁인다.
----「산촌. 2」중에서
한 움큼 손에 쥐면/ 뚝뚝 떨어지는/ 비슬산 일몰.
----「비슬산 가을」 중에서
문득 올려다본 밤하늘/ 그대는 반달로 떠서/ 오동나무에 걸려 있었네.
----「반달과 장미」 중에서
이처럼 견고한 성채(城砦)로 쌓아 올린 불멸의 시편들은 소통의 기표가 되어 숭고해 독자들의 정신적 피폐함마저 보듬어 내는 시들에 경의(敬意)를 표한다.
겨울과 봄의 경계를 지워보려는 듯 겨울을 뚫고 봄비가 투둑투둑 새싹처럼 움트는 봄밤.
이 시집을 읽고 또 읽으며 서성이게 하는 경이로움과 성찰의 감동은 전율을 느끼게 하는 충격이었다.
32년을 진화해서 쓰는 오늘날의 시인들에게 고정된 사고를 부수고 경건한 마음으로 고도의 창의적인 생각을 확장 시켜야 함을 오함마로 때리고 있다.
겨울은 형용사 봄은 동사라는 생각을 부수고 겨울이 동사가 되고 봄이 형용사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준 이 한 권의 시집에 이렇게 가슴이 울렁일 수 있음에 행복을 느낀다.
21세기 현대 시가 추구하는 것은 언어 주의 극복과 사물 시의 방향이라지만 정신적 궁핍을 겨냥한 새로운 발견과 그것을 시적 질료로 형상화 하고 능란하게 물처럼 흘러가게 하는 이 시집은 모순과 갈등까지도 자유로운 바람의 영혼으로 치환될 것 같다.
소백산 기운이 펄펄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시집「애월충(愛月虫)」에 창의적 벌레가 바글바글 살아나고 있다.
소백산을 키우는 산복숭아꽃들이 천천히 봄의 추를 옮기는 소리에 까칠했던 시간에 윤기가 흐른다.
화무십일홍의 교차지점인 저울의 한 시절에 하얀 눈금을 박고 눈금 자리마다 화농이 붉어지길 기다려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을 작대기로 휘적거려 나의 빈 계절을 길러야겠다.
#김기진 시인(현 영주문화원장)약력
*경북 영주 출생
*영주 문화원 원장
*경북 산업대 졸업
*문학세계 신인상 등림
*시집 「그리움은 창가에 성애 되어」「애월충」외
#이서빈 약력
■경북 영주 출생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달의 이동경로』『함께, 울컥』『올챙이를 산란하는 비요일』『창의력 사전』 外 다수
■한국 문인 협회 인성교육 개발위원
■한국 펜클럽 회원
■시인뉴스 포엠 편집위원, 모던포엠 편집위원. 스토리 문학 편집위원,
■주소: 서울시 중랑구 겸재로 54길 87, 1층 101호 우(02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