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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의 내기

- 황윤현 -

기사입력 2026-05-0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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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반, MBC 일요일 밤의 대행진 Love House 코너에 구조전문가로 출연하며 진행자인 신동엽, 디자이너 이창하 형, 김원철 아우 등과 친형제처럼 지낼 때의 추억이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잔잔한 포커게임을 갖고, 그 돈으로 식사도 하고 술도 한 잔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사람은 가끔 자기 자신에 대해 냉정해질 때가 있다. Love House를 하다 보니 주위에서 모두들 착하다는 칭찬 일색이다. 진실은 사업을 위한 것이고 각본에 의해 포장된 것뿐인데, 그런 칭찬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정말 내가 착한 사람이라도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 시절의 나에게는 그것이 무척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어느 날 포커를 하며 내가 동엽에게 물었다. "동엽아, 남들이 착하다고 하는 만큼 너 스스로 착하다고 생각하니?". "아냐 형· DNA는 착할 수가 없어." 모두에게 같은 걸 물어보았다. 누구 하나 순수한 마음으로 love house를 하고 있다고 말하지 못했고, 마음에 부담을 갖고 있음도 부정하지 못했다.

미리 생각해 두었던 한 가지 제안을 한다. "포커를 쳐서 딴 돈을 적립하자. 그래서 연말에 아무도 모르게 진정한 love house를 하나 지어보자. 그걸로 우리의 마음을 가볍게 하고 우리 스스로 카타르시스를 느껴보자." 모두 흔쾌히 동의해 주었고, 우리는 8개월 동안 따는 사람은 없고 잃는 사람만 존재하는 희안한 포커를 치며 어느 정도의 건축비용을 모을 수 있었다.


인력 지원을 위해 창하형과 내가 적을 둔 김천과학대가 있는 김천을 대상지역으로 하고 제자들을 통해 대상을 물색했다. 여름의 수해로 폐허가 된 마을에,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삼 남매가 쓰러져가는 단칸방에서 살고 있었다. 움막에 가까운 집에, 머리에는 이가 들끓고,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 초췌한 몰골의 아이들. 무책임한 아버지는 연락도 없고, 엄마는 집을 나가고...
첫 대면에 우리는 아무런 이견 없이 이 아이들로 결정할 수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비밀로 한 채 건축이 시작된다. 방학을 맞은 제자들 중 삼십여 명이 현장 요원으로 자원해 주었고, 그들의 도움으로 활기차게 공사가 진행되었다. 설계는 내가 맡고, 현장은 동엽이를 뺀 다섯 명이 시간을 쪼개어 돌아가며 감독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이창하 형이 어느 인터뷰에서 무심결에 우리의 계획을 발설했고, 백지연 앵커가 진행하는 '백야'라는 프로에서 전격적인 취재를 나온 것이다. 애초의 의도와 틀리다며 거부했지만, 아이들에게 후원이 생긴다는 설득과 주위의 만류로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선의로 시작된 일은 정초에 한 시간짜리 특집프로로 둔갑해 버렸고, 우리는 더 착한 사람으로 각색되고 말았다. 어쨌거나 아직까지 그토록 부담 없이 즐거운 도박에 빠져든 적은 없었다.


나는 트럼프, 화투 등의 도박성 강한 게임은 물론, 당구, 바둑, 골프 등 거의 모든 게임에 강하다. 물론 주위의 친한 사람들에 국한된 것이지만 어떤 내기이든 웬만해서는 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저 즐길 뿐 돈내기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아니, 차라리 싫어한다는 말이 더 적합하겠다. 이기는 통쾌함보다 지는 씁쓸함에 대한 배려랄까 안쓰러움이라 할까.... 함께 즐거운 게 좋지, 어느 일방만 즐거운 것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나와 돈내기를 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딴 돈을 도로 나누어주던지 함께 즐기는 일에 쓸 뿐, 절대 내 수중에 넣지 않는다. 그럼 왜 하냐고? 돈내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고고한 척, 분위기를 망가뜨리고 싶지는 않으니까...


청춘시절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고, 그런 돈을 집에 들이면 자식이 안 된다고. 본인들은 모르겠지만, 돈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좋은 평판을 듣는 걸 본 적이 없다. 특히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 중에 돈내기를 안하면 긴장감이 덜해서 재미가 없다.“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우스갯소리에 돈 잃고 속 좋은 놈 없다.“는 말이 있다. 따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잃는 사람이 존재하는 법. 이상한데서 재미를 느끼지 말고 좀 더 순수한 마음으로 만남을 즐기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주위 사람들이 나보고 엄청 강한 승부욕을 갖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건 나와의 승부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나를 이기면 자연스럽게 남도 이기더라'는 것이 살아온 날들이 입증해 준 소중한 경험칙 經驗則이다. 자기와의 내기는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는다는 걸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권대현 (youngju@new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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