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들/ 김도은
끊어진 샌들과 작별하는 법을 알려 주세요
예고 없는 순간들에
두 발을 전부 넣지는 말고
끈이 끊어질까 전전긍긍하지도 말고
더 이상 신을 수 없는
궂은 자리는 닦아도
아무도 신고 싶지 않은 내일이니까
한꺼번에 몰려왔다 몰려가는
물결치는 근방들처럼
한쪽 끈이 끊어진 관계를
해변을 오래 걸으면서
머릿속 혈관이 끊어진 사람 이야기를
모여서 했으니까
샌들의 끈이 끊어지고
한쪽 발을 손에 들고 걸었으니까
그땐 차라리 어느 한쪽을 버리고
어느 한쪽이 되는 것이 더 편한 일이었으니까
차라리
차라리
똑같아지는 일로 불행해지고
끊어진 샌들과
끊어지지 않은 반대쪽 샌들도
거짓말처럼 여름바다에 놓아버렸으니까
버리는 일은
한 켤레 속에
어느 쪽 발도 숨길 곳 없이 쓸쓸해지는
끊어진 쪽 말고
멀쩡한 쪽을
차라리, 라 부르는
닳아 있는 혼자/ 김도은
이리 날아와 줘
언니의 유일한 방법은 그런 것입니다
매번 지금에 실족하는 것
먹구름이 흘러 다닌 흔적처럼
언니에게선
푸른 이끼가 자랐습니다
이끼는 악천후의 점괘입니다
닳아 있는 혼자를 발견하는 일처럼
가려운 곳을 자꾸 긁다 보면
오늘이 쓰라려 집니다
그건 누군가 내 하루에
입을 댄 흔적입니다
의문이 닿은 거기,
세상에
닳아 있는 혼자로 남았다면
겹겹의 흐린 날에도
언니는 파릇파릇해질 수 있을까요
모두 저녁을 찾으러 간다/ 김도은
날이 새면서부터
모두 저녁을 향해 간다
문을 열어둔 그대로
저녁은 마치 검은 개와 같아서
부르면 천천히 다가온다
먼 곳을 미리 듣는다는 두 귀와
몇 년을 먼저 맡는 다는 코와
어제를 쓸어내는 커다란 꼬리를 흔들며 온다
밤을 길러낸 든든한 사람이 된다
무성하게 자란 검은 털엔
온갖 불빛들을 묻히고 해가 지듯
달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듯 온순하게 다가온다
내 안에 돌보지 않은 날들도 따라 나왔다
빛과 어둠은 그저 하나의 미끼였다
무심히 지나가다
잘못 걸려든 것들은 그것대로
엎지른 하루를 나눠 가져도 괜찮았다
어떻게든 수거해야 할 아침이었으므로
다가올 저녁을 서둘러 찾으러 가는 사람들은
서류뭉치의 사면을 탁탁 맞추고
기울어진 곳마다 깔려 있는 그늘을 접고
광장의 종탑 같은 정오를 돌아간다
마치 도시 외곽에 널찍한 공터를 마련해 놓으면
하나 둘 모여드는 폐품들 같고
약간 씩 귀퉁이가 찌그러진 박스들이
굴곡진 주소들을 정확히 찾아오듯
일몰 이후를 찾아간다
방심과 방류 사이에서 태어난 세계는
시소처럼 한쪽이 가벼워지면
건너편이 무거워지듯
자신들 집이 무거워지는 그 시간으로
바깥을 탁탁 털고
저녁이라는 안쪽으로 들어간다
부엌창 너머로 본 것도 같은
아슬아슬한 저녁의 무게
김도은 시인은 아주 독창적인 시를 쓴다.
시인의 시는 사물을 비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사물이 인간을 사유하게 만든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이며 문학비평가인 가스통 바슐라르는『공간의 시학(The Poetics of Space)』에서 ‘사물은 인간의 상상력을 품고 있는 집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도은 시인의 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물이 상상력을 담고 있는데 그치지 않고 사물이 인간을 사유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욱 독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샌들」에서 시인은 인간과 신발의 관계를 설명하는 비유가 아니라 관계를 철학 하는 주체로 이전하며 ‘끊어진 샌들과 작별하는 법을 알려’ 달라며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는 자문자답으로 ‘예고 없는 순간들’이 와도 ‘끈이 끊어질까 전전긍긍하지도 말고’라며 저녁을 시간의 배경이 아니라 문명을 다시 귀환시키는 존재로 ‘차라리 어느 한쪽을 버리고/ 어느 한쪽이 되는 것이 더 편한 일이었으니까’라며 존재는 풍경이 아니라 시간이 사유가 되어 스스로를 기록하는 언어로 바꾸어 사물의 의미를 인간이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인간의 존재를 해석하는 주체로 전환되는 새로운 시적 방법론을 보여 주고있다.
인간은 남과 비교하는 일 즉, ‘똑같아지는 일로 불행해지고’ 왜 멀쩡한 쪽도 버려야 하는지를 질문하고 있다.
‘끊어진 샌들과/ 끊어지지 않은 반대쪽 샌들도/ 거짓말처럼 여름바다에 놓아버렸으니까’ 여기서 샌들이 끊어졌다는 사건은 단순한 생활의 불편이 아니다. 이 문구는 인류 문명은 무언가가 망가지면 고치거나 버리는 방식으로 진화했는데 이제 더 이상 고치지 않고 더욱 놀라운 것은 끊어진 샌들은 물론 멀쩡한 샌들까지 버린다는 것. 이것은 물질 만능 시대에 환경이 망가져 버렸다는 현대 철학이 숨어 꿈틀거리고 있다.
‘버리는 일은/ 한 켤레 속에/ 어느 쪽 발도 숨길 곳 없이 쓸쓸해지는’이라는 문구는 인간과 사람의 관계는 결론적으로 짝이었던 시간임을 말한다. 짝을 잃은 물건은 더 이상의 쓸모를 폐기해야 하는 일이다. 이것은 존재론의 근본을 되짚어 보는 일이다. ‘끊어진 쪽 말고/ 멀쩡한 쪽을/ 차라리, 라 부르는’ 에서는 어찌해야 인간의 선택이 현명해지는 걸까? 를 질문하고 있다. 니체가 말한 운명애(Amor Fati)도 결국 ‘차라리’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이 더 이상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을 때 부르는 철학이라 이름할 수 있는 ‘차라리’는 여기에서 부사가 아니라 명사가 되어 언어의 품사를 뒤집는다. 그 순간 존재 역시 뒤집히게 하는 이 한 줄은 매우 보기 드문 언어 철학적 성취다.
다음 시「닳아 있는 혼자」라는 제목에서 이미 놀라움이 극치에 이른다. 남을 위해 다 닳고 반달 조각처럼 남은 비누 같기도 하고 자신의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히는 촛불 같기도 하여 이 놀라운 표현에 먹먹해진다.
레비나스는 ‘철학은 존재를 묻기 전에 먼저 타인의 고통을 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는 경쟁과 성취의 논리가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게 사느라 타인의 절박한 요청과 절규에도 눈 감고 오직 자신의 영달과 이익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문구 첫 연에서 ‘이리 날아와 줘’는 사랑 고백이 아니라 존재를 향한 구조 신호이다. 인간은 혼자 살지 못한다. 여기서 ‘혼자’는 숫자가 아니라 상태를 뜻한다. 닳았다는 것, 즉 혼자는 사물이 되어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는 뜻이다. 이 작품에서 ‘언니’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인간에게 가장 친근하고 오래된 호칭을 말한다. ‘언니에게선/ 푸른 이끼가 자랐습니다/ 이끼는 악천후의 점괘입니다’ ‘푸른 이끼’는 식물이 아니라 시간을 말한다. 오래 머문 곳에서만 자라나는 이끼, 이 이끼가 언니에게 자랐다는 말은 푸른 슬픔이 오래 거주했다는 뜻이다. ‘의문이 닿은 거기,/ 세상에/ 닳아 있는 혼자로 남았다면 겹겹의 흐린 날에도/ 언니는 파릇파릇해질 수 있을까요’ 현대 사회는 상처를 스스로 치료해야만 한다. 과연 혼자 치료하면 파릇파릇 살아날 수 있을까? 모든 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온김으로 ‘닳아 있는 혼자’가 될 수 있을까?
다음「모두 저녁을 찾으러 간다」시 숲속을 거닐어 본다.
문명은 태어나면서부터 저녁을 향해 걷는 거대한 행렬이다.
‘날이 새면서부터/ 모두 저녁을 향해 간다’ 이 작품은 첫 연에서 시간을 공간으로 바꾸는 거대한 일을 완수하고 있다. 여기서 ‘저녁은 시간이 아니라 집을 말한다.
이 시에서 ‘검은 개’는 죽음이 아니라 귀향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저승의 문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가 있다. 여기서는 ‘검은 개’가 집으로 걸어온다.
죽음이 인간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삶이 인간에게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게인류는 ‘어제를 쓸어내는 커다란 꼬리를 흔들며’ 역사와 문명을 건설했다.
‘몇 년을 먼저 맡는 코’는 단순한 동물의 후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냄새를 맡는 능력을 말한다. 역사는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기도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뒤적여 사람들이 살면서 남긴 냄새를 맡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죽기 위해 태어난다는 명제와 같이 언제나 저녁을 만들기 위해 문명을 건설하는지도 모른다.
불도 집도 농업도 도시도 국가도 모두 결국 저녁을 안전하게 맞기 위해 만들어졌는지도 모른다. 그 안에서 ‘무성하게 자란 검은 털엔/ 온갖 불빛들을 묻히고 해가 지듯/ 달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듯 온순하게 다가’ 오고 그것은 어쩌면 ‘그저 하나의 미끼’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광장의 종탑 같은 정오’
는 근대문명을 상징하면서 종탑은 시간을 측정하고 저녁은 시간을 살아내기 위한 시계를 만들었다. 그 시계 속에서 여전히 저녁을 찾는 것은 문명의 모순이다. ‘시소처럼 한쪽이 가벼워지면/ 건너편이 무거워지듯’은 삶에서 생이 많이 남았으면 죽음이 가벼워지고 생이 조금 남았으면 죽음이 무거워짐을 역설하고 있는 철학적 시다.
하나의 역사를 관통하는 ‘샌들’ ‘이끼’ ‘저녁’이라는 서로 다른 소재를 사용하지만, 샌들은 이동의 문명, 이끼는 정주의 문명, 저녁은 귀환의 문명으로 인류 문명을 만들었다. 그러나 결국 샌들은 끊어지고, 이끼는 상처를 덮고, 저녁이 무거워지는 것은 산업화 이후 인간이 경험하는 문명의 피로를 압축한 상징체계다. 인간은 완전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끊어지고, 닳아가고, 돌아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는 존재이다.
철학적 존재론과 현상학, 해체철학의 문제, 인문학적으로는 귀환의 문제, 역사적으로 이동·정주·귀환이라는 인류 문명의 궤적을 하나의 시적 구조 안에 겹쳐 놓았다.
김도은 시인의 이 세 작품은 일상의 사물을 통해 인간 문명의 가장 오래된 질문을 다시 묻는 보기 드문 성취를 보여 준다.
오히려 끊어진 것이 존재를 만든다. 라는 역설을 선언한 시 세 편을 읽고 갑자기 적막해진다.
시인은 학구파라 시 소설 수필 장르를 꼭꼭 씹어먹어 몸속에 자양분을 많이 저장해둔 준비된 시인이라 장래가 촉망(屬望)된다. 이런 시인이 동시대 함께여서 행복하다.
# 김도은(본명. 김정미) 시인 약력
김도은 시인
* 2015년<시와 소금> 시 등단
* 2024년 영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 2025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 제 15회 춘천문학상 수상.
*김정미 문학 상상 연구소 대표.강원대학교 평생교육원 <글쓰기와 인문학> 강사
* 시집 『오베르 밀밭의 귀』, 『그 슬픔을 어떻게 모른 체해』
* 산문집 『비빔밥과 모차르트』,『골목, 게으른 산책자 』
* 이메일: jungmi9118@hanmail. net
# 이서빈 시인 약력
이서빈 시인
■경북 영주 출생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시집:「달의 이동 경로」「함께, 울컥」「올챙이를 산란하는 비요일」
「창의력 사전」 外 다수
■한국 문인 협회 인성교육 개발위원
■한국 펜클럽 회원
■시인뉴스. 모던포엠. 스토리문학 편집위원
■소설: 대하소설 「소백산맥」 17권, 영주신문 연재 출간
■이메일: happyjy890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