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하나 있다. 아주 귀한 친구가.
오래전, 조국이라는 사람으로 인해 광화문에는 규탄하는 사람들이, 서초동에는 옹호하는 사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나라가 둘로 쪼개질 것 같았을 때의 일이다. 두 인파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을 때 광화문을 향하였다. 안국역에서 내려 때론 흐뭇해하기도, 때론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면서 나의 본적지인 효자동까지 걸어갔다.
아버지는 강원도 철원 태생이시다. 철원은 600년의 세월을 통해 창원 황 씨의 집성촌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해방 후 38도선 이북에 위치함에 따라 어운면장을 하시던 할아버지께서 공산 세력을 피해 종로구 효자동으로 이주하시면서 본적지를 옮기게 된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누가 고향을 물어오면 아버지가 태어나시고 자라신 철원을 고향이라고 말한다. 난 그 일이 자랑스러웠다.
그날 광화문에서 소리 한 번 지른 적 없고, 팔 한 번 들어본 적 없다. 그냥 한참을 걸어 돌아서 내려오다 '세이브 더 칠드런'이란 어린이 구호 단체에 기부 서명을 한 게 그날 그곳에서 한 일의 전부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라의 혼란으로 걱정과 상심에 빠지신 노구의 아버지를 위로해 드리려고 그곳에 간 것이다. 저녁 밥상 앞에서 갔다 왔다고 말씀드리면 조금이나마 흡족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실 테니까.
아! 한 일이 또 하나 있다. 고 1 때부터 변함없는 절친인 친구와 전화 통화 한 일. 목사이며 '전국종교인 연합회' 사무총장과 진보 성향이 도드라진 신학대학교 교목에 몸 담고 있는 친구에게. 공교롭게도 그 시간에 그 친구는 서초동에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는 보수이다. 부모님을 위해 보수일 수밖에 없는 장남이다. 하지만 이념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진보 건 보수 건, 모두 하나의 인격체로서 복합적인 이유에 의해 어느 한쪽의 성향을 지니고 있을 뿐으로, 그 '다름'을 옳고 그름이나 선악으로 규정짓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때문에 자식들에게 강요한 적도 없을뿐더러 그로 인해 타인과의 교류를 주저하는 일도 없다. 언행이 일치하고 사고방식이 올바르다면 그 사람이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는지는 사귐의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건축에 종사하다 뒤늦게 시인으로 데뷔하면서 여러 아끼는 후배들을 두게 되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모두 진보 성향의 후배들이다. 2019년 등단하여 지금까지 변함없이 우정을 나누고 있는 후배 시인들, 나는 그들을 아끼고 사랑한다.
가끔 동호인 밴드에 정치색 짙은 글들이 올라와도 그 논리에 억지가 없다면 나는 기꺼이 '엄지 척'을 찍어준다. 시인으로서, 아니 성숙한 지식인으로서 잘못된 것에 대해 논리적 저항을 한다는 것은 용기 있는 일이고 고귀한 일이다.
가끔, 그런 일로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단체에서 탈퇴한다 거나, 얼굴을 붉히는 사람들에게는 연민을 느끼게 된다. 본의 아니게 받게 되는 마음의 상처가 애처로운 것이다. 나 또한 신문에 칼럼을 쓰면서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것은 필연이기도 하다. 솔직히 미안함을 느낄 때도 적지 않다.
나는 이 사회의 지식인으로서 잘못된 것에 대해 논리적이고 용기 있는 저항을 하고 싶다. 어떤 이념을 갖는다는 것은 Zero sum game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존을 위한 균형 유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지형은 0에서 시작하여 50이 되었다가 다시 0으로 끝나는 선상에 위치한다. 아마도 나는 진보 쪽으로 한가운데 50을 넘어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20의 안쪽에 머물 일도 없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양 진영의 극단에 위치한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진보 건 보수 건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논리적, 객관적 사고가 결여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Echo chamber에 갇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피곤한 일이다.
언어를 갈고닦는 것은 날카로움을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디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나의 언어로 누군가 상처를 받게 된다면, 그처럼 괴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사랑하며 살고 싶다. 동창이거나 친구 거나 어떤 단체이거나, 적어도 어떤 시절인연으로 묶인 사람들 사이에서 이념 나부랭이 따위로 척을 지며 살고 싶지는 않다. 하여도 잘못된 현상에 대해서는 그것이 진보이건 보수이건 바로잡기 위한 용기를 잃고 싶지는 않다. 하늘가 이름 없는 뭍별에 지나지 않는 시인일지라도.
문득, 친구가 그리워지는 밤이다.